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당황해서
며칠 전부터 갑자기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졌다.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팔을 입고 다녔던 것 같은데, 달력을 보니 벌써 9월 중순을 향하고 있다. 출근길에 가벼운 가디건을 하나 걸칠까 하다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간절기 점퍼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옷장에 있는 건 너무 오래된 것들이거나, 아니면 지금 입기에는 너무 두껍고 칙칙한 색상들뿐이라서 말이다. 결국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렀다. 사실 평소라면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대충 저렴한 브랜드 후드집업 하나 사서 입었을 텐데, 왠지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걸 하나 사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층마다 돌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백화점 여성복 코너를 한참 돌아다녔다. 요즘은 확실히 경량 나일론 소재의 셔링 디테일이 들어간 점퍼들이 많이 보였다. 브랜드마다 앞다퉈서 하이넥 점퍼나 볼륨 실루엣을 강조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니 가격대가 만만치가 않았다. 괜찮다 싶어서 가격표를 보면 기본 3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 예전에는 닥스 니트 하나 사는 것도 고민했는데, 이제는 홑겹 점퍼 하나도 이렇게 비싸졌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어떤 매장에서는 가죽 블루종을 보여주는데 디자인은 참 예쁘더라. 하지만 10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보고 나니 ‘과연 내가 이걸 매일 입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들었다. 비싼 돈 주고 사서 옷장에 모셔두기만 할 게 뻔해서 말이다.
너무 화려하거나 혹은 너무 스포티하거나
중간에 스포츠 매장 쪽도 둘러봤다. MLB 같은 곳에 가보니 카리나가 입었다는 스포티브 바람막이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확실히 젊은 느낌이고 편해 보이기는 했다. 10만 원 후반대면 가격도 백화점 여성복 브랜드에 비하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입어보니 너무 운동하러 가는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에 입고 가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스포티한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트레이닝 자켓은 동네 마실 나갈 때나 편하게 입지, 출근용으로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학생 후드집업은 왠지 내 나이에 입으면 조금 어색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차려입은 느낌의 간절기 점퍼는 또 손이 안 갈 것 같고. 중간 지점을 찾기가 참 어렵다.
결국 빈손으로 나오게 된 이유
한 2시간 정도를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퉁퉁 부었다. 사람들도 많고 매장 조명도 너무 밝아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사실 지금 당장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옷장을 열어보니 작년에 샀던 얇은 야상 점퍼가 구석에 걸려 있었다. 이걸 왜 진작 안 입었을까 싶다. 굳이 새로 50만 원짜리 점퍼를 사지 않아도, 지금 당장 날씨에 맞는 옷은 충분히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나는 옷이 사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기분 전환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스웨이드 자켓이나 여성 조끼 같은 아이템들도 슬쩍 눈에 들어왔지만, 지금 당장 지갑을 열 만한 설렘은 없었다.
다시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리게 될지도
지금은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와서 만족하고 있지만, 아마 내일쯤이면 또 쇼핑 앱을 켜고 있겠지. 어제 본 그 제품이 인터넷에서는 조금 더 싸게 나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다른 브랜드에서는 좀 더 무난한 디자인의 간절기 점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신중해지기로 했다. 지난번에 샀던 털옷도 결국 몇 번 안 입고 당근마켓에 올렸던 기억이 나니까. 간절기는 항상 이렇게 애매하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입을 옷은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제대로 된 아우터 하나 고르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이번 주는 그냥 있는 옷들을 레이어드해서 어떻게든 버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