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박스가 쌓일수록 마음이 묘해지는 기분

택배 박스가 쌓일수록 마음이 묘해지는 기분

어쩌다 보니 매일 현관 앞이 택배 박스다

요즘 들어 부쩍 인터넷 쇼핑을 자주 한다. 예전에는 20대 옷 쇼핑몰 순위 같은 걸 검색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지금은 그냥 인스타그램 광고에 뜨는 것들을 무심코 클릭하게 된다. 스퀘어넥 원피스가 갑자기 유행이라길래 하나 샀고, 출근할 때 입을 만한 무난한 슬랙스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실 예전에는 11번가나 대형 오픈마켓에서 쿠폰 챙겨가며 사는 게 당연했는데, 요즘은 무슨 브랜드인지도 모를 개인 쇼핑몰들이 많아져서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문제는 이렇게 사놓고 나면 막상 입을 옷이 없다는 기분이 든다는 거다. 어제도 5만 원 정도 되는 셔츠를 받았는데, 막상 입어보니 상세 페이지에서 봤던 그 느낌이 안 나서 한참을 거울 앞에서 서성였다. 상세 페이지 속 모델들은 다들 분위기 있어 보이는데 왜 나는 그저 그런지, 가끔은 이런 나 자신이 좀 우습기도 하다.

괜히 샀나 싶은 날들의 반복

한번은 친구 결혼식에 입고 갈 하객룩을 급하게 사느라 10만 원 가까이 썼다. 데일리룩 코디라고 해서 평소에도 입을 수 있다고 광고하길래 믿었는데, 실제로 받아보니 재질이 너무 얇아서 한여름 말고는 입기 힘들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쌓이니까 이제는 택배를 뜯을 때 설렘보다는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불안함이 먼저 앞선다. 예전에는 옷 하나 사는 게 큰일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쉽게 사고 너무 쉽게 잊히는 것 같다. 어쩌다 옷장을 열어보면 반 이상이 태그도 안 뗀 상태로 걸려 있다. 이게 다 돈인데 싶다가도,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휴대폰으로 쇼핑몰 앱을 켜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 필요한 게 있어서 사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의 묘한 거리감

최근에 용산 아이파크몰에 다녀왔는데, 웹툰 팝업 스토어 같은 행사가 많아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거기서 직접 옷을 만져보고 입어보니 확실히 온라인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기서 옷을 사지는 않게 된다. 매장 점원이 따라붙는 게 부담스러운 것도 있고, 이상하게 온라인에서 보는 가격보다 비싸게 느껴지기도 해서다. 매장에서 대충 사이즈만 확인하고 집에 와서 비슷한 디자인을 더 싼 가격에 파는 쇼핑몰을 찾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가 좀 계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 복잡하다. 돈을 아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쇼핑이라는 행위 자체에 중독된 건지 알 수가 없다. 명상이나 요가를 시작하면 이런 물욕이 좀 사라질까 싶어서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영상 밑에 달린 광고 링크를 타고 들어가 또 옷을 구경하고 있더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쇼핑의 피로감

가끔 뉴스를 보면 대형 쇼핑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특히 일본 구마모토 지진 당시 대피했던 직원이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야 했던 사건 같은 걸 보고 나면 마음이 참 착잡해진다. 우리는 그저 핸드폰으로 편하게 옷을 주문하고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놓인 택배를 받지만, 그 뒤에는 누군가의 노동과 복잡한 물류 시스템이 있다는 걸 너무 쉽게 잊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쇼핑을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일주일 뒤면 다시 새로운 신상품 알림을 누르고 있는 나를 본다. 20대 초반에 누군가와 커플 선물을 고르겠다고 콩깍지닷컴 같은 곳을 헤매던 시절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공허함이랄까. 그냥 이번 달에는 옷 사는 걸 좀 줄여야지, 생각하면서도 오늘도 습관적으로 배송 조회를 해본다.

결국 남는 건 옷과 고민뿐

오늘도 또 하나의 택배가 도착했다. 이번엔 제발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박스를 뜯기도 전에 벌써 ‘반품할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옷을 사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또 마음처럼 쉽지 않다. 왜 이렇게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삶이 무료해서 그런 건지 가끔은 진지하게 고민이 된다. 누군가는 웰니스니 뭐니 하면서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당장 내일 입고 나갈 옷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그게 참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내일은 이 옷을 입고 나갈 수 있을까? 입고 나가서 하루 종일 불편하지는 않을까? 이런 사소한 불안함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또 다음 쇼핑을 부추기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