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퀘어넥 블라우스 하나 고르려다 진이 다 빠졌다

스퀘어넥 블라우스 하나 고르려다 진이 다 빠졌다

인터넷 쇼핑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 옷장에 손을 뻗어보니 정말 입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실감이 났다. 작년 여름엔 대체 뭘 입고 다녔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그냥 무작정 핸드폰을 켜고 쇼핑몰들을 뒤적거렸다. 처음엔 인스타그램 광고에 뜨는 20대 타겟의 화려한 옷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솔직히 이제는 그런 디자인을 입으면 어딘가 어색할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그렇다고 50대 이상을 타겟으로 한 쇼핑몰들은 너무 편안함에만 치중한 것 같아 또 망설여지고. 결국 그 중간 어디쯤인 모던 시크 스타일을 찾겠다며 몇 시간을 허비했다.

스퀘어넥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올해는 유독 스퀘어넥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시원해 보이고 목선이 깔끔해 보여서 하나쯤 장만하고 싶었는데, 이게 참 어려운 옷이다. 어떤 건 너무 파여서 숙일 때마다 신경이 쓰이고, 어떤 건 어깨 끈이 자꾸 흘러내려서 하루 종일 옷매무새만 고치게 된다. 4만 원대 중반의 가격을 주고 산 블라우스 하나가 그랬다. 사진으로 봤을 땐 정말 청순하고 단정해 보였는데, 막상 입어보니 속옷 끈을 숨기는 게 일이었다. 투명 끈을 써볼까 고민하다가도 그 특유의 감성이 깨지는 것 같아 그냥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이런 옷은 왜 모델들이 입었을 땐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걸까.

셔츠와 바람막이 사이에서 겪는 고민

냉감 소재니 시어서커니 하는 기능성 소재가 여름에는 최고라는 걸 알지만, 디자인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코오롱이나 K2 같은 곳에서 나오는 셋업 제품들은 확실히 실용적이다. 예전에 샀던 얇은 바람막이는 등산할 때나 입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출퇴근 길에 가볍게 걸치기에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역시나 멋을 부리고 싶은 날엔 청셔츠를 고집하게 된다. 그런데 여름용으로 나온 얇은 청셔츠는 왜 이렇게 금방 구겨지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다림질을 하고 나와도 지하철 한 번 타고 내리면 이미 구김 투성이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향수를 뿌려보기도 하지만, 그 눅눅한 느낌은 향수로도 가려지지가 않는다.

구매 건수만 늘어가는 쇼핑 기록

주식 팔아서 명품 산다는 뉴스 기사를 보면 남의 세상 이야기 같기도 하다. 나처럼 소소하게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만 원짜리 상의 하나 고르는 데도 진이 빠지는 사람에겐 명품은 그저 구경거리일 뿐이다. 최근엔 골프 벨트백 같은 것도 사고 싶어 기웃거렸는데, 생각해보니 골프도 안 치면서 왜 그런 걸 사고 싶은 건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마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사면 내 스타일이 확 바뀔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택배 박스를 뜯고 입어보는 순간, 현실은 여전히 작년에 입던 티셔츠와 바지를 찾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옷장 문제

지금 내 옷장은 남성복 매장인지 여성복 매장인지 모를 정도로 뒤섞여 있다. 샤오훙수에서 본 ‘남성복을 입는 여성’이라는 트렌드가 어쩌면 나에겐 가장 잘 맞는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헐렁한 티셔츠나 작업복 스타일의 바지가 사실 제일 편하니까. 그렇다고 매번 그렇게만 입고 나갈 수는 없어서 또다시 쇼핑몰을 헤맨다. 오늘 저녁에도 퇴근길에 핸드폰으로 장바구니만 채웠다 비웠다를 반복했다. 딱히 마음에 쏙 드는 건 없는데, 그렇다고 안 사자니 마음이 불안하고. 이게 나만 겪는 피로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쇼핑이 즐겁기보단 가끔은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일은 그냥 편하게 입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지만, 아마 내일도 또다시 새로운 옷을 찾고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