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면 골목 어딘가에서 느낀 묘한 기분
지난주에 정말 고민 끝에 집에서 잠자고 있던 명품 호보백을 들고 서면 쪽으로 나갔다. 예전에는 30대 여성 브랜드로 나름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샀던 건데, 이게 시간이 지나니까 손이 잘 안 가게 되더라. 사실 작정하고 나간 건 아니고, 그냥 ‘이걸 계속 가지고 있는 게 맞나’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요즘 중국 시장도 그렇고 중고 럭셔리 시장이 커진다느니 하는 기사를 몇 번 봐서 그런지, 팔면 그래도 치킨 값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기대가 컸던 것 같다. 막상 매장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좁고 복잡했다. 지도 앱을 켜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는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이 콩닥거리는지 모르겠다.
첫 번째 매장에서 받은 차가운 견적
첫 번째로 들어간 곳은 나름대로 입소문이 난 부산 중고명품매입 전문점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사장님이 가방을 쓱 보더니 아주 능숙한 손길로 이리저리 살피시더라. 가죽 상태는 어떤지, 지퍼는 잘 작동하는지 꼼꼼하게 보는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겐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결국 제시받은 금액은 내 예상보다 꽤 낮았다. 구찌 가방 가격이 요즘 매장에서 얼마인데, 내 건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라니. 물론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막상 숫자로 딱 들으니까 좀 허탈했다. 사장님은 ‘요즘 이 모델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라고 무심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왜 이렇게 내 취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던지.
번개장터 검수와 비교해보던 고민
사실 매장을 가기 전에 번개장터 같은 중고 거래 앱도 한참 들여다봤다. 요즘은 안전 결제 시스템도 있고 성수동에는 검수 캠퍼스까지 운영한다니 세상이 정말 좋아졌구나 싶긴 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직접 사진을 찍고, 연락 오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혹시 모를 진품 논란이나 흥정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걸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온라인으로 올리면 더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건 알지만, 그 귀찮음을 감당하기엔 내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다. 차라리 오프라인 매장에서 현금을 바로 받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괜히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 군데를 돌고 나니 드는 생각
결국 서면 일대의 매장을 세 군데 정도 돌았다. 발은 아프고, 가방은 여전히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마지막 매장에서는 차라리 맡겨두고 위탁 판매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팔리면 수수료를 떼고 돈을 주는 방식인데, 그게 당장 현금이 생기는 건 아니라서 고민이 됐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으로 명품 빈티지 쇼핑몰들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내가 팔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제품들이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올라와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이게 중간 마진의 현실인 건지, 아니면 내가 가진 물건의 가치를 내가 너무 후하게 쳐줬던 건지 헷갈렸다.
결국은 다시 옷장 속으로
집에 돌아와서 그냥 가방을 다시 옷장 안에 넣어뒀다. 당장 급한 돈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서둘러서 헐값에 넘겨야 하나 싶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팔린 내 가방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걸 상상하니 왠지 모를 서운함도 밀려왔다. 다음 주쯤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 싶긴 한데, 아마 당분간은 그냥 이렇게 묵혀둘 것 같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정리를 결심하고 나갔다가, 오히려 그 결심이 옅어지고 돌아오는 날.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