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서 보던 실크 광택이 안 나와서 한참 들여다봤다

화면에서 보던 실크 광택이 안 나와서 한참 들여다봤다

마른 체형 때문에 시작한 인터넷 수입 의류 뒤적거리기

평소에 옷을 살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바로 애매한 사이즈다. 키는 보통인데 골격이 워낙 작고 유독 마른 편이라 일반 보세 쇼핑몰에서 파는 ‘프리 사이즈’ 옷을 사면 대개 남의 옷을 대충 걸쳐 입은 것처럼 품이 벙벙하고 어색하다. 그렇다고 백화점 아동복 코너에서 옷을 고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자연스럽게 44사이즈 쇼핑몰이나 수입 의류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마른 사람들을 위한 핏을 찾다가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 같은 곳에서 수입여성의류를 전문으로 다룬다는 엘르멤므나 수헬렌 같은 사이트들을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 자주 들락거렸다. 디자인이 일반 국내 쇼핑몰 제품들과는 다르게 조금 독특하기도 하고, 너무 흔해 빠진 보세 느낌이 안 나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사실 이런 사이트들은 모델의 연출 컷이 워낙 감각적이라 나처럼 체구가 작은 사람도 입으면 저렇게 핏이 딱 맞아떨어질 것 같은 이상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고급 블라우스라고 올라온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내 옷장에 있는 기본 슬랙스랑 매치하면 출근할 때나 모임 갈 때 딱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다시 비우기를 몇 날 며칠 반복하다가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르기로 마음먹었다.

가격대가 애매해서 더 망설여졌던 주문 과정

인터넷 쇼핑 치고는 솔직히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었다. 대충 15만 원에서 20만 원대 후반 사이의 가격대였는데, 평소에 편하게 사 입던 몇만 원짜리 티셔츠나 스파 브랜드 옷에 비하면 섣불리 결제하기가 망설여지는 금액대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백화점 캐릭터 여성복 브랜드의 40~50만 원이 훌쩍 넘는 옷값과 비교하면 또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 같아 보이는 묘하게 애매한 경계선에 있었다. 화면 사진상으로는 실크 혼방 특유의 은은한 광택감이 돌고 목 부분의 셔링이나 소매 단추 디테일도 꽤나 정교하게 짜인 것처럼 보였다. 결국 고민 끝에 가을까지 아우터 안에 받쳐 입기 좋을 것 같은 톤 다운된 베이지 톤의 블라우스를 하나 골라 결제 단계로 넘어갔다. 그런데 결제를 하려고 하니 수입 대행 제품이라 그런지 개인통관고유부호를 입력하라는 입력창이 갑자기 떴다. 여기서부터 살짝 귀찮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전에 직구할 때 발급받아 둔 번호가 도통 기억나지 않아서 메모장 앱을 켜고 옛날 기록을 찾느라 한참 동안 스마트폰 화면을 뒤적거려야 했다.

통관 번호를 넣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이주일의 시간

결제를 다 마치고 나니 진짜로 배송이 제대로 올지, 화면이랑 딴판인 조잡한 물건이 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며칠이 지나도 배송 조회 화면에는 상태가 계속 ‘현지 준비 중’으로만 표시되어 있었다. 성격이 급해서 고객센터에 바로 문의 글을 남길까 하다가, 수입 의류 쇼핑몰들의 특성상 리오더가 들어가거나 통관 절차가 겹치면 배송이 하염없이 지연된다는 주의사항 문구를 보고 그냥 포기하고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내 방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놓이기까지는 거의 12일 정도의 긴 시간이 걸렸다. 특히 인천 세관에 물량이 밀려 입항 신고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던 사흘 동안은 매일 아침 배송 추적 앱을 새로고침하면서 불안해했는데, 이 과정이 참 은근히 사람 진을 빼놓는 구석이 있었다. 주말에 예정된 지인 결혼식 때 입고 갈 생각으로 시켰던 건데, 결국 예식 바로 전날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마음이 꽤 조마조마했다. 택배 포장 상자는 의외로 투박했고, 겉 비닐을 뜯자마자 수입 의류 특유의 뻣뻣한 새 옷 냄새와 약간의 꿉꿉한 창고 냄새가 섞여 나와 베란다 창가에 몇 시간 동안 걸어두고 환기부터 시켜야 했다.

제이에스뉴욕 택이 붙은 블라우스를 뜯어보고 느낀 첫인상

냄새를 대충 빼고 옷깃 안쪽을 들여다보니 제이에스뉴욕이라는 라벨이 꿰매어져 있었다. 인터넷 쇼핑을 자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입 보세 브랜드나 도매 네임으로 종종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라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거실 바닥에 옷을 넓게 펼쳐놓고 양쪽 어깨 대칭이 맞는지, 단추 구멍 실밥이 터진 곳은 없는지부터 자세히 살폈다. 색감 자체는 다행히 상세 페이지에서 보던 차분한 베이지색과 거의 비슷해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원단의 촉감은 생각했던 것과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촤르르 흐르는 유연한 실크의 감촉보다는 다소 뻣뻣하고 서걱거리는 느낌이 강한 면 혼방 소재에 가까웠다. 옷을 직접 몸에 꿰어 입어보았는데, 44사이즈 기준에 맞춰 샀음에도 불구하고 어깨선은 딱 맞았지만 가슴 밑단이나 겨드랑이 부분이 생각보다 여유가 없이 타이트했다. 팔을 위로 들어 올리거나 앞으로 뻗을 때 겨드랑이 안쪽 원단이 팽팽하게 당겨져서,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거나 활동하기에는 다소 불편하겠다는 직감이 퍼뜩 들었다.

백화점 기성 브랜드 제품과 비교하며 확인한 디테일의 한계

작년에 큰맘 먹고 아울렛에서 구매했던 백화점 브랜드 한섬 타임(TIME)의 기본 블라우스를 옷장에서 꺼내 나란히 옷걸이에 걸어두고 비교해 보았다. 확실히 마감 부위에서 단가가 차이 나는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백화점 브랜드 제품은 안쪽 시접 처리가 얇은 원단으로 한 번 더 감싸진 바이어스 재봉 기법으로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어서 살에 닿을 때 깔끄러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반면 새로 산 수입 블라우스는 안쪽이 그냥 일반 오버록으로 드륵드륵 박혀 있어서 군데군데 실밥 뭉치가 삐져나와 있었고, 단추 구멍 주변에도 미처 정리되지 않은 실오라기들이 엉켜 있어서 가위로 일일이 잘라내야 했다. 단추 자체의 도금 퀄리티도 얼핏 보면 번쩍거려 예쁘지만 자세히 보면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감이 티가 났다. 10만 원대 중후반이라는 돈이 아주 적은 돈은 아닌데, 이 정도의 디테일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돈을 조금 더 보태서 확실한 기성 브랜드를 사는 게 장기적으로는 낭비를 줄이는 길인가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마음에 안 든다고 반품을 하려니 왕복 해외 배송비며 통관 수수료 명목으로 수만 원이 차감된다는 안내가 기억나 그냥 입기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옷장 구석에 걸어둔 채 손이 잘 가지 않는 옷걸이 위 상황

그 결혼식 날 딱 한 번 입고 외출한 이후로 그 블라우스는 내 옷장 한구석에 몇 주째 그대로 걸려 있다. 드라이클리닝을 주기적으로 맡기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지만, 입었을 때 겨드랑이와 어깨 움직임이 묘하게 뻣뻣했던 불편한 착용감의 기억 때문에 아침에 출근 옷을 고를 때 손이 쉽게 가지 않는 탓이 크다. 멀리서 대충 얼핏 보면 디자인도 평범하지 않고 실루엣도 그럴듯해서 당시 모임에서 옷 예쁘다는 소리를 한 번 듣기는 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 옷을 입고 있는 내내 느꼈던 미세한 압박감과 안쪽 마감의 아쉬움 때문에 마음 편히 손이 가는 데일리아이템이 되지는 못했다. 앞으로 이런 인터넷 수입 쇼핑몰에서 옷을 살 때 실패 확률을 줄이려면 실측 사이즈를 더 깐깐하게 비교해야 할지, 아니면 귀찮더라도 매장에 직접 가서 입어보고 살 수 있는 브랜드 옷으로만 옷장을 채워야 할지 아직도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오늘도 장바구니에 담아둔 또 다른 수입 원피스 결제창을 켜놓고 샀다가 또 후회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며 화면을 하염없이 내리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