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장 구석에서 발견한 가죽 자켓의 정체
주말에 옷장 정리를 하다가 몇 년 전에 샀던 가죽 자켓을 하나 꺼냈다. 이게 아마 30만 원 초반대였던가, 아니면 20만 원 후반이었던가 가물가물하다. 당시에는 봄 가디건 대신 입으면 멋질 것 같아서 샀는데, 솔직히 제대로 입고 나간 적은 손에 꼽는다. 꺼내보니 소매 끝부분이 살짝 하얗게 일어나 있는 게 보여서 마음이 좀 복잡했다. 가죽 전용 클리너를 사야 하나 싶다가도, 이거 관리하는 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알고 나니 의욕이 싹 사라졌다. 예전에 트렌치코트랑 데님 자켓만 돌려 입다가 가죽을 갑자기 챙기려니 귀찮음이 먼저 앞서는 거다.
생각보다 코디가 까다로웠던 이유
한때는 흰 티에 가죽 자켓만 걸치면 시크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입고 나가면 분위기가 너무 과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박하나 씨가 드라마에서 가디건 위에 레이어드해서 입은 걸 보고 예쁘다 싶어서 따라 해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입으면 왜 그렇게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숏 자켓 형태라 다리가 길어 보이긴 하는데, 같이 입을 만한 게 마땅치 않다. 여름 원피스 위에 걸치기엔 너무 덥고, 그렇다고 니트 원피스랑 매치하기엔 자켓이 너무 얇아서 애매하다. 요즘 유행하는 MA1 같은 항공 점퍼처럼 휘뚜루마뚜루 걸치기엔 가죽 특유의 무게감이 확실히 부담스럽긴 하다.
수선과 관리 사이의 딜레마
인터넷을 찾아보니 가죽 자켓 수선 가격이 보통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는 줘야 한다고 한다. 자켓 자체를 30만 원 정도에 샀는데, 수선비로 10만 원을 쓰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 돈이면 새로 나온 괜찮은 여성 셔츠 자켓을 하나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계산이 선다. 하지만 그렇다고 버리자니 가죽 질감이 나쁜 건 아니라서 버리기도 참 애매하다. 누군가는 가죽은 낡을수록 멋이라던데, 내 눈엔 그저 관리가 안 된 낡은 옷으로만 보인다. 어제는 세탁소에 가서 문의를 해볼까 하다가도 그냥 접어 넣었다. 어차피 전문가한테 맡겨도 완벽하게 새것처럼 돌아오지는 않을 거라는 걸 이미 겪어봐서 잘 아니까.
언제 입어야 할지 모르는 애매한 시간
가죽 자켓은 계절성이 참 독특하다. 가을에는 춥고 봄에는 잠깐 입다가 바로 덥다. 결국 1년 중에 제대로 입을 수 있는 기간이 2주에서 3주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남자 명품 자켓들을 보면 디자인이 깔끔해서 오래 입는다는데, 내가 산 건 그때 유행을 너무 많이 탄 핏이라 지금 입으면 약간 촌스러운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작년에는 한 번도 안 입었고, 올해도 그냥 옷장에 넣어둘까 싶다. 옷장에 자리가 좁아서 좀 비워야 하는데, 막상 처분하려니 또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게 사람 심리인 것 같다.
비슷한 옷들 사이에서 길을 잃다
요즘 쇼핑몰들을 보면 데님 자켓이나 깔끔한 셔츠 자켓들이 예쁘게 잘 나오더라. 가격도 10만 원 안팎이면 질 좋은 걸 구할 수 있는데 굳이 이 무거운 가죽 자켓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문득 며칠 전에 봤던 한소희가 입고 나온 가죽 자켓은 정말 멋있었는데, 역시 패션의 완성은 옷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뻔한 결론만 떠오른다. 그냥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입어보고, 거울 보고도 마음에 안 들면 당근에 내놓든가 해야겠다. 그런데 사진 찍고 올리는 과정도 너무 귀찮아서 아마 이번 달도 그냥 넘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