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그냥 아무거나 입고 나가려고 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등산이나 좀 다녀볼까 싶어 옷장을 뒤적거렸다. 작년에 사둔 이름 모를 브랜드의 바람막이가 하나 있긴 한데, 이게 땀이 차면 그렇게 눅눅해질 수가 없다. 입고 나가서 정상 근처라도 가면 등 뒤로 땀이 맺히는 게 다 느껴지는데, 그게 기분이 영 찝찝해서 새로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큰 욕심은 없었다. 그냥 대충 가볍고, 비바람만 잘 막아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하이버 같은 앱을 봐도 스포츠 상품 거래액이 90% 올랐다느니 하는 기사가 보이던데,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지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고르려니 왜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모르겠다.
2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의 벽
브랜드 매장을 몇 군데 둘러봤는데 가격대가 참 애매하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곳은 디자인은 무난한데 기능성 소재라고 붙은 택을 보면 10만 원 중반대는 기본으로 넘어가고, 조금 괜찮다 싶은 고어텍스 소재는 20만 원 후반대까지 올라간다. 등산이 취미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옷에 이 정도를 쓰는 게 맞나 싶어 망설여졌다. 예전에는 그냥 아무거나 걸치고 갔던 것 같은데, 요즘은 뭐 하나 살 때마다 이게 정말 필요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내 만족을 위한 건지 헷갈린다. 매장에서 입어본 30만 원짜리 재킷은 확실히 가볍긴 하더라. 거의 안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걸 입고 거친 산길을 다니다가 나뭇가지에라도 걸려서 올이라도 나가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너무 가벼우면 오히려 불안하다
결국 고민 끝에 10만 원 초반대 경량 바람막이를 하나 샀다. 무게가 200그램도 안 된다고 하던데, 손에 들고 있으면 거의 종잇장 수준이다. 근데 이게 막상 입어보니 너무 얇아서 그런지, 배낭 멜빵에 쓸리는 부분이 벌써부터 보풀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매장 직원은 내구성이 좋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글쎄다. 작년에 샀던 5만 원짜리 보세 옷보다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든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샀으니 뽕을 뽑아야지. 오전 11시쯤 아차산에 잠깐 다녀왔는데, 바람이 세게 부니까 확실히 체온 유지는 되더라. 파라솔 기둥이 날아갈 정도의 강풍은 아니었지만, 산 정상에서 땀 식히는 동안에는 이만한 게 없긴 하다.
전술 재킷을 기웃거려본 짧은 생각
한번은 인터넷에서 전술 재킷이라는 걸 봤다. 주머니도 많고 튼튼해 보여서 혹했는데, 막상 등산용으로 입기엔 너무 무겁지 않을까 싶어서 접었다. 친구는 차라리 남자 등산 반바지에 레깅스를 받쳐 입고 바람막이는 그냥 가성비 좋은 걸로 자주 바꾸는 게 낫다고 하던데,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등산복이라는 게 자기만족이 큰 분야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몇십만 원짜리 세트를 풀 장착하고 오고, 어떤 사람은 그냥 편한 면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도 잘만 올라간다. 나는 그 사이에서 뭘 좀 더 챙겨야 안심이 되는 그런 어중간한 상태인 것 같다.
결론 없는 고민은 계속된다
오늘도 옷장을 열어보니 새로 산 바람막이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이게 정말 내 등산 생활을 더 편하게 만들어줄지는 잘 모르겠다. 날이 더워지면 또 금방 땀이 차서 배낭 안에 쑤셔 넣게 될 게 뻔한데 말이다. 그래도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또 거추장스러운 게 등산복인가 싶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곳을 가볼 생각인데, 그때는 또 다른 장비가 눈에 들어오겠지. 옷 하나 사는 걸로 이렇게까지 길게 생각할 일인가 싶다가도, 막상 산에 가면 또 이런저런 옷차림을 관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완벽한 옷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 기분 따라 입고 나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