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낚시 장비 쇼핑
지인이 요즘 문어 낚시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해서 팔랑귀인 내가 또 그 말을 덥석 물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낚시라고 해봤자 근처 방파제에서 바다낚시찌 하나 달랑 들고 세월아 네월아 하던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문어는 힘이 좋아서 튼튼한 장비가 필요하다는 말에 덜컥 겁부터 났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문어 낚시대 추천 글이 왜 이렇게 많은지. 하나같이 자기네 제품이 최고라는데, 전문가용인지 입문용인지 구분하기도 벅찼다. 고민 끝에 결국 적당한 가격대의 릴대를 골랐다. 5만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이면 차라리 맛있는 문어 숙회를 사 먹는 게 훨씬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낚시소품가방과 함께 도착한 의문의 부속품들
물건들이 한꺼번에 도착했을 때의 그 묘한 현타란. 낚시소품가방 안에 맨도래, 편납홀더, 새우망 같은 것들이 가득 담겨 왔다. 사실 이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건지 유튜브를 봐도 영 감이 안 왔다. 특히 맨도래는 너무 작아서 손가락이 굵은 나에게는 곤욕이었다. 선상 낚시를 가려면 배 예약을 해야 하는데, 속초나 남해 쪽 배 낚시 선단은 이미 주말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집 근처 좌대 낚시터를 알아봤는데, 우경받침틀 같은 거창한 장비는 거기서도 짐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멋 부리느라 짐만 늘렸나 싶어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바다 위에서 겪은 예상치 못한 고난
막상 나가보니 현실은 차가웠다. 낚시 초보인 내가 문어를 잡기는커녕 밑걸림 때문에 원투대 채비만 몇 번을 날려 먹었는지 모르겠다. 옆에서 보던 아저씨는 내 채비가 너무 무겁다며 핀잔을 주셨는데, 사실 그게 무거운 건지 가벼운 건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문어가 붙으면 묵직한 느낌이 온다는데, 그저 바닥 돌덩이를 건드리는 느낌과 뭐가 다른 건지 도통 구분이 안 갔다. 56도 웨지 같은 골프채 이름도 헷갈리는데 낚시용어까지 섞이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결국 그날 문어는 구경도 못 하고 작은 물고기 몇 마리만 잡아서 옆 사람에게 다 나눠주고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 남은 장비들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집에 돌아와 낚시소품케이스를 열어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젖은 채로 대충 넣은 봉돌들이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데,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정돈된 케이스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던데, 나한테는 그냥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다음에는 그냥 배 낚시 체험 같은 곳에 몸만 가서 다 빌려 써야지, 굳이 내 장비를 고집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물론 언젠가 다시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아주 미세한 기대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은 낚시 가방을 구석에 밀어두고 싶다.
장비는 장비일 뿐 결국은 감각이 문제인가
사실 문어 낚시대가 H급이든 M급이든 초보한테는 다 똑같지 않을까 싶다. 튼튼한 장비를 샀다고 해서 고기가 더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바닥을 읽는 감각이랑 운이 중요한 것 같다. 주변에서는 한번 제대로 해보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제대로’의 기준을 모르겠다. 돈은 돈대로 쓰고 몸은 몸대로 고생하고, 결국 남은 건 낚시 소품들뿐이다. 그래도 다음번에 또 누군가 문어 낚시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또 따라나설 것 같아 그게 제일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