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시를 입고 뛰는 게 생각보다 쑥스러웠다
며칠 전부터 밤에 뛰기 시작했다.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 낮에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고, 밤바람이 불 때 나가는 게 딱 적당하더라. 근데 문제는 옷이었다. 집에 굴러다니는 면 티셔츠를 입고 나갔더니 땀에 흠뻑 젖어서 몸에 착 달라붙는 게 너무 불쾌했다. 그래서 큰맘 먹고 러닝용 나시를 하나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신사 스탠다드나 젝시믹스 같은 곳이 워낙 많으니까 대충 아무거나 고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매장에 가서 러닝용 나시를 고르려니 묘하게 머뭇거리게 되더라. 이게 뭐라고,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다들 몸이 좋아서 나시를 입는 건지, 아니면 나시를 입어야만 뛰는 맛이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적당히 얇고 통기성이 좋아 보이는 3만 원대 제품을 하나 집어 들고 나왔는데, 계산하면서도 ‘이거 입고 나가서 뛰면 너무 과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땀 흡수랑 건조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결국 집에서 입어보고 다음 날 밤 바로 입고 나갔다. 확실히 면 티셔츠랑은 다르더라. 바람이 불 때마다 몸에 닿는 느낌이 훨씬 가벼웠다. 예전에 운동 좀 해보겠다고 샀던 런닝 반바지랑 매치해보니 나름대로는 그럴싸한 조합이 완성됐다. 그런데 뛰기 시작한 지 20분 정도 지나니까 문제가 생겼다. 어깨 끈 쪽이 땀에 젖어서 살짝 쓸리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시간이 갈수록 은근히 신경 쓰였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어깨 부분이 살짝 붉게 올라와 있었다. 비싼 브랜드는 안 그랬으려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내 살성이 예민한 건가 싶기도 해서 좀 찝찝했다. 4만 원 가까이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음엔 어깨끈이 좀 더 넓은 걸로 고를걸 그랬나 싶다. 얇으면 얇을수록 시원하긴 한데, 이런 자잘한 마찰은 생각 못 했다.
야간 러닝에는 반사판이 필수라는 사실
한참을 뛰다가 신호 대기 중에 옆에 있는 다른 러너들을 보게 됐다. 다들 뭔가 엄청 전문적으로 보였다. 특히 바람막이를 얇게 걸치고 뛰는 사람들은 옷에 반사판 같은 게 달려 있어서 어두운 곳에서도 눈에 확 띄더라. 내가 산 나시는 그냥 검은색 민무늬라 야간에 차들이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챔피온 같은 데서 나온 반사판 붙은 모델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그걸 살 걸 그랬나. 아니면 나중에 야광 조끼라도 하나 걸쳐야 하나 고민이 됐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눈에 띄는 색상을 고를 걸 그랬다. 지금은 그냥 시커먼 나시 하나 입고 다니니까 밤중에 골목길 지날 때면 괜히 움츠러든다. 이게 뭐라고 러닝 하나 시작하는 데 이렇게 준비할 게 많은지 모르겠다.
칼로리 계산이 주는 묘한 피로감
뛰고 나면 애플워치나 핸드폰 앱에 뜬 칼로리 소모량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어떤 날은 300칼로리 찍히고, 어떤 날은 400칼로리 찍히는데, 이게 정확한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지만, 왠지 이거 안 확인하면 제대로 운동 안 한 기분이라 찝찝하다. 땀에 흠뻑 젖은 나시를 세탁기에 넣으면서 오늘도 30분 달렸으니 됐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솔직히 배윤정 씨나 김성은 씨 같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모습 보면 엄청 건강해 보이는데, 나는 그냥 땀 범벅이 된 채로 현관문을 열 때마다 ‘아, 오늘도 해냈다’와 ‘귀찮은데 내일은 쉴까’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래도 일단은 옷을 샀으니 몇 번 더 뛰긴 해야겠지.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고민 중이다
러닝복 세트로 깔끔하게 입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하나하나 사면서 고민하고 후회하는지 모르겠다. 런닝바지랑 나시를 깔맞춤해서 입으면 훨씬 운동할 맛이 날 것 같긴 한데, 막상 지갑을 열려고 하면 또 망설여진다. 지금 있는 나시도 벌써 세탁을 두어 번 했더니 처음 샀을 때보다 목 늘어남이 미세하게 보인다. 스포츠 의류는 왜 다 이렇게 수명이 짧은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학원 끝나고 늦은 밤에 잠깐 나가서 뛰었는데, 땀이 좔좔 흐르면서도 그냥 나시 한 장 입고 밖을 돌아다니는 게 좀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옷 때문에 신경 쓰이는 점들이 몇 가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시 입고 밤공기 마시며 달리는 이 느낌은 나쁘지 않다. 다음엔 좀 더 비싼 걸 사볼까, 아니면 그냥 싼 거 사서 자주 갈아치울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