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쇼핑은 갈 때마다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백화점 쇼핑은 갈 때마다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나이 먹으니 옷 고르는 게 숙제가 됐다

주말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다녀왔다. 딱히 뭘 사야겠다고 작정하고 간 건 아니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좀 칙칙해 보여서였다. 40대가 되고 나니 옷장에는 온통 검은색, 짙은 남색 아니면 회색뿐이다. 출근할 때 고민하기 싫어서 샀던 옷들이 이제는 나를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드는 것 같다. 젊어 보이고 싶어서 밝은 색을 골라보려 해도 손이 떨린다. 거울 앞에서 대보면 영락없이 삼색 신호등이 된 기분이라 도로 제자리에 걸어두길 수십 번이다. 예전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대충 골라 입어도 태가 났던 것 같은데, 이제는 사이즈 하나만 애매해도 핏이 무너져서 직접 입어보지 않으면 불안하다.

몽클레르 매장 앞에서 느낀 묘한 거리감

매장들을 돌아다니다가 몽클레르 쪽을 지나갔는데, 아기 옷을 보러 온 부부들이 참 많더라. 200만 원짜리 키즈 패딩이라니, 내가 입는 옷보다 비싼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나도 한때는 나를 위해 투자를 좀 할까 싶었는데, 막상 지갑을 열려고 하면 애들 학원비나 생활비가 먼저 떠오르는 게 40대의 숙명인가 싶다. 옷 한 벌에 40만 원, 50만 원씩 하는 걸 선뜻 집어 들지 못하는 나 자신이 가끔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나는 팝업 스토어나 대중적인 브랜드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서도 결국 무채색 반팔티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스스로가 좀 답답했다.

영포티 소리 듣기는 싫고 깔끔하게는 입고 싶고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영포티’니 뭐니 하면서 볼캡 쓰고 스트릿 브랜드 입는 40대들을 조롱하는 글들을 종종 본다. 사실 나도 나잇값 못 하고 억지로 젊은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유행하는 스타일은 엄두도 못 낸다. 그렇다고 아저씨처럼 입기는 싫고, 그 사이의 애매한 지점을 찾는 게 참 어렵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델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내가 입으면 저 느낌이 날까’ 싶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가도 삭제하길 반복한다. 차라리 그냥 깔끔한 기본 반팔티에 면바지가 제일 마음 편한데, 그 기본을 찾으러 백화점을 세 시간 넘게 돌아다녔으니 시간 낭비인가 싶기도 하고.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의 허탈함

결국 이날 백화점에서 산 건 커피 한 잔이 전부였다. 옷은 사지도 못하고 괜히 기만 빨려서 주차장을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보니, 애초에 남들 시선 의식하지 말고 그냥 내가 편한 걸 입으면 될 일인데 싶었다. 그런데도 계속 누군가에게 세련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왜 버려지질 않는 건지 모르겠다. 다음번에는 그냥 동네 시장 옆 작은 옷가게에서 적당히 5만 원 정도 하는 티셔츠나 사서 입어야겠다. 브랜드 로고 크게 박힌 옷은 이제 좀 부담스럽다.

쇼핑은 왜 갈수록 숙제가 될까

집에 와서 다시 옷장을 열어봤다. 예전에 사둔 남색 티셔츠가 목이 살짝 늘어난 게 보였다. 버릴까 하다가 그냥 내일 집 앞 편의점 갈 때 입어야지 싶어서 다시 걸어뒀다. 옷이라는 게 그냥 몸을 가리는 용도면 좋으련만,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인 위치나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처럼 느껴져서 피곤하다. 아마 다음 계절이 바뀌면 또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 백화점을 기웃거릴 것 같다. 이 숙제는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다. 해결책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아예 관심 밖으로 미뤄두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