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설픈 흉내 내기의 시작
거울 앞에 서서 셔츠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SNS에서 본 그 느낌이 안 난다. 분명히 같은 화이트 셔츠인데, 누군가는 세련된 프렌치 시크 룩을 완성한다는데 내가 입으면 그냥 학교 다녀오는 길인 건지, 아니면 급하게 세탁소에서 찾아온 옷을 입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SES 바다가 파리에서 입은 그 도트 톱 스타일이 너무 예뻐서 비슷하게라도 따라 해보려고 했는데, 막상 입어보니 거울 속의 나는 그냥 집에서 뒹굴다가 나온 사람 같아서 기운이 빠졌다. 프렌치 시크가 뭔지, 결국 대충 걸쳐도 멋있어 보여야 하는 건데 왜 나는 30분 동안 고민을 해도 결과물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구호플러스와 세인트제임스의 레이어드 유혹
최근에 구호플러스랑 세인트제임스가 협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꽤 설렜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레이어드를 해서 입는 게 이번 컬렉션 포인트라는데, 화보 속 모델들은 왜 그렇게 겹겹이 껴입어도 날씬하고 멋있는 건지. 나도 따라 하겠다고 10만 원 중후반대를 호가하는 티셔츠를 살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가진 옷들도 이미 충분히 많지 않나 싶다. 집에 굴러다니는 줄무늬 티셔츠가 몇 벌인데, 거기다가 셔츠 하나 더 껴입는다고 그 느낌이 날까? 괜히 돈 써서 옷장만 더 복잡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그 특유의 감성이 탐나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는 내 모습이 참 애잔하다.
셔츠와 데님의 어려운 조합
누군가 화이트 셔츠와 데님이면 끝이라고 하던데, 사실 이게 제일 어려운 거 같다. 셔츠 단추를 한두 개 풀고 실버 목걸이를 하면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해봤다. 단추를 더 풀면 너무 파인 것 같고, 덜 풀면 답답해 보인다. 셔츠 깃을 세우면 너무 작위적이고, 그냥 두면 구겨진 종이 같다. 데님은 또 어떤가. 핏이 예쁘면 불편하고, 편하면 핏이 안 산다. 20만 원이 훌쩍 넘는 수입 데님을 사볼까 싶다가도, 결국 세탁 한번 잘못하면 줄어들까 봐 늘 망설이게 된다. 그냥 동네 근처 쇼핑몰에서 5-6만 원대 무난한 청바지를 사서 입고 다니는데, 이게 정말 프렌치 시크 룩의 정석인지 아니면 그냥 아줌마의 편한 외출복인지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참 힘들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핏의 문제
오전 9시, 출근 준비를 하면서 또다시 고민한다. 어제는 차려입겠다고 빳빳한 셔츠를 꺼냈다가 저녁에는 너무 불편해서 후회했다. 프렌치 시크는 ‘무심함’이 핵심이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심하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차라리 그냥 대충 입고 나가는 게 더 멋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나가서 거울을 보면 내 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꾸 옷 매무새를 다듬게 된다. 40대가 넘어가니 이제는 멋도 멋인데 편한 게 최고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씩 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쁜 옷을 포기하기엔 아직 조금 아쉬운 마음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결국은 오늘도 청바지에 티셔츠
사실 옷장에 있는 옷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 흰 셔츠, 짙은 색 청바지. 구성은 완벽한 프렌치 시크인데, 입는 사람이 문제인지 옷이 문제인지 항상 2%가 부족하다. 어쩌면 그 부족한 2%가 내 자신감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너무 고민하다가 결국 귀찮아져서 제일 손에 잡히는 옷을 대충 입고 나갔는데, 오히려 그런 날 지인들이 옷이 예쁘다며 어디 거냐고 물어봤다. 내가 고민해서 차려입은 날에는 아무 말도 없더니, 무심하게 입은 날에는 칭찬을 듣다니 아이러니하다. 결국 프렌치 시크는 옷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내일이면 또다시 옷장 문을 열고 한참을 서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