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넨 셔츠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다 구겨져서 옷장에 박아뒀다

린넨 셔츠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다 구겨져서 옷장에 박아뒀다

린넨은 도대체 어떻게 입어야 하나

올해는 유난히 올드머니룩이니 뭐니 해서 차분한 톤의 린넨 셔츠가 많이 보였다. SNS를 켜면 다들 빳빳하게 다려진 린넨 셔츠에 슬랙스를 매치해서 우아하게 입고 있길래, 나도 왠지 그렇게 입으면 사람이 좀 정돈되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에 구경만 하던 버니파우더 같은 여성 쇼핑몰들을 뒤져서 괜찮아 보이는 린넨 셔츠를 하나 샀다. 가격은 대략 6만 원대 중반 정도였는데, 린넨 치고는 아주 저렴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비싼 것도 아닌 딱 애매한 가격대였다. 배송은 생각보다 빨랐고, 처음 택배를 뜯었을 때의 그 바스락거리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입고 나가는 순간 시작되는 구김의 향연

문제는 실제로 입고 나간 날 발생했다. 아침에 스팀 다리미로 공들여서 펴놓고 입고 나갔는데, 지하철에 앉아서 한 30분 정도 가니까 이미 팔꿈치랑 허리 뒤쪽이 난리가 나 있었다. 처음엔 그냥 좀 자연스러운 멋이지, 하고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 앞쪽 단추 라인까지 쭈글쭈글해진 걸 거울로 확인하고 나니 갑자기 급격하게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게 내가 입으면 자연스러운 멋인데 남이 보면 그냥 관리 안 된 옷처럼 보일까 봐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가격대가 조금 더 나가는 제품은 안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이미 린넨 소재 자체가 그런 건데 괜히 돈을 더 쓴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생각보다 손이 안 가서 난감하다

한 번 입고 나갔다 오면 세탁하고 다시 다림질해야 하는데, 사실 그 과정이 너무 귀찮다. 출근할 때 1분 1초가 아쉬운 마당에 다림질을 5분씩 하고 있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여자 55사이즈인 나한테 핏은 딱 좋았는데, 옷장에 넣어두고 한 달째 한 번도 안 꺼냈다. 결국 린넨은 그냥 휴양지에서나 입는 옷인가 싶다가도, 길 가다 보면 또 누가 단정하게 입은 거 보면 예뻐 보이고.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다른 옷들이랑 비교해봐도 답이 안 나온다

집에 있는 폴리 혼방 셔츠는 그냥 빨아서 툭 털어 널면 끝인데, 린넨은 자연 소재라는 명목하에 나한테 노동력을 더 요구하는 셈이다. 명품 여성 의류 매장 지나가면서 린넨 셔츠를 봐도 다들 조금씩은 구겨져 있더라. 그냥 그게 린넨의 운명인가 싶다. 그래도 가끔 린넨 특유의 그 시원한 느낌 때문에 포기는 못 하겠고. 여름 내내 고민하다가 결국 가을이 오면 린넨은 또 옷장 깊숙이 들어가겠지.

정리를 해봐도 딱히 방법이 없다

결국 고민 끝에 스팀 다리미를 좀 더 성능 좋은 걸로 바꿀까 싶기도 한데, 그러면 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망설여진다. 요즘 쇼핑몰 순위 상위권에 있는 곳들을 봐도 린넨은 다들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냥 한 번 입고 나가서 구겨져 돌아오면 ‘오늘 린넨 입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고 마음을 비우는 게 유일한 해결책인가 싶다. 사실 이런 사소한 불편함을 견디는 게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내 성격이 너무 예민한 건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내일은 그냥 편한 면 티셔츠나 입고 나가야겠다. 린넨은 좀 더 고민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