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동 구제거리에 굳이 차를 몰고 들어갔던 날

식사동 구제거리에 굳이 차를 몰고 들어갔던 날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은 기분

주말에 갑자기 옷장 정리를 하다가 낡은 바람막이들이 눈에 거슬렸다. 요즘 홍대 빈티지샵 같은 곳들이 워낙 비싸지기도 했고, 가끔은 먼지 냄새 좀 맡으면서 싼 맛에 괜찮은 거 하나 건지는 재미가 그리워지기도 해서 무작정 식사동으로 향했다. 고양시 쪽에 구제거리가 있다는 말은 전부터 들었는데, 사실 제대로 위치를 파악하고 간 건 아니었다. 내비게이션에 식사동 구제거리를 찍고 가는데, 점점 공장 지대 같은 풍경이 나타나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싶었다. 길도 좁고 트럭들이 쌩쌩 지나가서 운전하는 내내 좀 긴장했다. 도착해서 보니 길가에 듬성듬성 구제샵 간판들이 붙어 있는데, 여기가 맞긴 맞나 싶을 정도로 한적했다. 홍대나 성수 같은 번화가 빈티지샵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거기는 뭔가 꾸며진 느낌이라면, 여기는 그냥 옷 창고를 털러 온 기분이랄까.

린넨 머플러 하나 건지려다 만난 것들

들어가 본 첫 번째 가게는 창고형 매장이었다. 바닥에 쌓여 있는 옷 무더기를 보니 순간 막막해졌다. 여기서 어떻게 보물을 찾나 싶어서 멍하니 서 있다가, 그냥 눈에 띄는 것부터 집어 들었다. 아디다스 빈티지 트랙탑들이 한쪽에 꽤 많이 걸려 있었는데, 연식에 따라 상태가 천차만별이었다. 가격표를 보니 대략 2만 원에서 5만 원 사이. 브랜드 바람막이도 비슷했다. 사실 나는 얇은 린넨 머플러나 좀 가벼운 셔츠를 찾으러 온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겨울 외투 쪽을 더 뒤적거리고 있었다. 옷마다 택이 제대로 안 붙어 있어서 사장님한테 계속 얼마냐고 물어봐야 했는데, 그게 은근히 번거로웠다. 나중에는 그냥 대충 뭉뚱그려서 가격을 부르시는 것 같기도 하고, 정가가 정해진 게 아니라서 흥정을 해야 하나 고민도 잠시 했다. 결국 린넨 머플러는 못 찾고 왠지 모를 갈색 니트만 하나 집어 들었다. 한 1만 5천 원 정도 줬던가. 요즘 온라인 쇼핑몰 가격 생각하면 싸긴 싼데, 내 시간과 기름값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 건지 가끔 계산이 안 선다.

먼지 냄새와 커피 한 잔의 유혹

한두 시간 정도 땀을 흘리며 옷 무더기를 뒤지다 보니 목이 말랐다. 사실 구제거리 자체가 카페가 즐비한 동네는 아니라서, 길가에 있는 작은 편의점이나 간이 카페 같은 곳이 눈에 띄면 반가울 지경이다. 예전에 가봤던 동묘 구제시장 같은 활기찬 분위기와는 결이 다르다. 동묘가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사람 구경하는 재미라면, 식사동은 진짜 작정하고 ‘옷을 파헤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버티기 힘들다. 한 곳 들어가서 한 30분만 옷을 뒤져도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비염이 좀 있는 나는 중간중간 코를 훌쩍거렸다. 근처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거의 생명수 같았다. 옷을 더 볼까 하다가도 이미 충분히 먼지를 마신 것 같아서 그냥 일어서기로 했다. 원래 계획했던 중고 가방도 몇 개 봤는데, 상태가 너무 애매해서 선뜻 손이 안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은 묘한 기분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방금 산 옷들을 보니 갑자기 현타가 조금 왔다. 이거 진짜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인가. 집에 가서 세탁기에 세 번은 돌려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사실 빈티지라는 게 사 올 때는 ‘득템했다’ 싶은데 집에 오면 그냥 ‘천 덩어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빈티지노’ 같은 유명한 곳이나 인터넷 카페들을 보면서 나도 창업을 한번 해볼까 했던 적이 있는데, 직접 가서 옷 무더기를 보니 그게 노동 강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장님들이 도매로 떼어다 여기서 골라내고 손질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 가격에 파는 게 대단하기도 하고. 그래도 가끔은 이런 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이상하게 머리 식히는 데 도움이 된다.

만족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결과

집에 와서 니트를 빨래 망에 넣고 돌리면서 생각했다. 다음에는 그냥 돈을 좀 더 주더라도 깔끔하게 정돈된 곳에서 사야지, 싶으면서도 또 주말이 되면 식사동 쪽으로 핸들을 돌릴 것 같기도 하다. 뭐가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 싼 가격에 괜찮은 옷을 찾았다는 쾌감은 분명히 있는데, 그만큼의 노동과 먼지와의 사투를 또 할 수 있을까. 니트에서 여전히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섬유유연제를 더 들이부었다. 이게 잘한 쇼핑인지, 아니면 그냥 주말의 평범한 헛짓거리였는지, 지금 당장 결론 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어차피 내일 입어보고 별로면 다시 옷장에 처박히겠지. 빈티지 쇼핑은 항상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