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를 너무 얕봤던 모양이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린넨 소재는 무조건 시원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서 백화점 쇼핑몰 앱을 뒤적이다가 린넨 노카라 자켓 하나를 덜컥 결제했다. 그때 본 제품은 17만 원대였는데, 디자인이 깔끔하고 여름에도 입기 좋다는 상세 페이지의 문구에 홀딱 넘어갔던 것 같다. 모델이 입은 핏은 참 시원해 보였는데 말이다. 사실 막상 택배를 뜯어보니 린넨 특유의 까슬거림이 생각보다 강해서 깜짝 놀랐다. 이게 내 피부에 닿으면 어떨까, 벌써부터 걱정이 조금 되긴 했지만 디자인이 예뻐서 그냥 품기로 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여름 옷 관리
옷장에 넣어두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날이 좀 풀려서 꺼내 입었는데, 이게 참 애물단지다. 일단 주름이 너무 잘 간다. 지하철 좌석에 딱 15분 앉아있었을 뿐인데, 자켓 뒷부분이랑 팔꿈치 쪽에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잡혀서 일어날 때마다 괜히 민망했다. 그리고 노카라 디자인이라 목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막상 린넨 혼방 소재의 두께감이 있어서인지 한낮에 야외를 돌아다니기엔 무리였다. 차라리 얇은 가디건을 걸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17만 원이라는 가격이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닌데, 입을 수 있는 날씨의 범위가 이렇게 좁을 줄은 몰랐다.
스타일과 실용성 사이의 고민
주변에서는 그래도 예쁘다고들 한다. 특히 블랙이나 네이비 계열의 자켓은 어떤 옷에 걸쳐도 무난해서 회사에 입고 가기엔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출퇴근 길이다. 조금만 걷다 보면 등 뒤로 땀이 차는데, 린넨 자켓 안감까지 있으니 이게 통풍이 잘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어떨 때는 그냥 면 티셔츠 하나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티브리즈 같은 브랜드 제품들이나 다른 곳에서 나오는 린넨 반팔 자켓들도 다 비슷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다들 예뻐서 입는 건지, 아니면 나만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건지 잘 모르겠다.
결국 옷장 구석으로 밀려난 자켓
지난주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옷장 깊숙이 넣어버렸다. 꺼내서 스팀 다리미로 주름을 펴는 것도 이제는 일처럼 느껴진다. 가죽 자켓이나 트위드 자켓처럼 계절감이 확실한 옷들은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입는데, 이 애매한 린넨 자켓은 ‘오늘 날씨가 괜찮겠지’ 하고 나갔다가 낭패를 보기 일쑤다. 날씨가 25도만 넘어가도 린넨의 통기성보다는 안감의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 것 같다. 나중에 좀 더 선선해지면 다시 꺼내 보겠지만, 글쎄, 지금 당장은 손이 잘 안 간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
사실 옷 쇼핑이라는 게 그렇다. 직접 입어보고 몸소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옷이 나랑 잘 맞는지 알 수가 없다. 13만 원대의 숏팬츠랑 매치하면 세트처럼 예쁘다길래 세트로 살까 고민도 했었는데, 그랬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지금은 그냥 집에 있는 아무 옷에나 툭 걸쳐보는 수준인데, 정작 제대로 입고 나갈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다음에 비슷한 옷을 산다면 무조건 안감이 없는 걸로 사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쇼핑몰 사진을 보면 또 예뻐 보이는 마법에 걸리겠지. 이 불확실한 쇼핑의 끝은 어디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