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워진 저녁에 급하게 산 바람막이

갑자기 추워진 저녁에 급하게 산 바람막이

어쩌다 보니 화이트 바람막이를 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팔 티셔츠 한 장 입고 돌아다녔는데, 어제저녁엔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바람이 차가웠다. 퇴근길에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으스스해서 근처 쇼핑몰에 들어갔다. 원래는 적당한 가디건이나 집업자켓 하나 살 생각이었는데,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묘하게 눈에 띄는 흰색 바람막이가 있었다. 사실 흰색은 때 타기 쉽고 관리하기 번거로워서 평소엔 쳐다도 안 보는데, 그날따라 조명 아래서 바스락거리는 질감이 꽤 예뻐 보였다. 가격은 8만 원 중반대였는데, 요즘 물가 생각하면 아주 비싼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저렴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애매한 가격이었다. 고민하다가 그냥 샀다. 집에 가서 입어볼 생각도 안 하고 바로 택을 떼고 그 자리에서 입고 나왔다.

집업 칼라를 끝까지 올리는 습관

매장 직원이 집업 칼라를 끝까지 올리면 더 쿨해 보인다고 하길래 따라 해 봤는데, 생각보다 목이 좁아서 좀 답답했다. 그래도 쌀쌀한 가을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요즘 다들 이런 식으로 가을 패션을 완성한다는데, 거울을 보니 그냥 동네 편의점 가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아침에 급하게 운동하러 나온 사람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이 자체제작티셔츠랑 매치하니까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이 옷을 입고 나오니 예전에 샀던 가벼운 여름 사파리 재킷이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그건 좀 더 빳빳한 면 소재였는데, 이건 확실히 나일론이라 가볍긴 하다. 그런데 가방에 넣으면 구김이 너무 많이 가서, 나중에는 그냥 하루 종일 입고 다녀야 하는 게 좀 단점이다.

비가 올 때의 불편한 진실

어제는 그래도 날이 맑았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산 지 하루 만에 우비 대용으로 입게 된 셈이다. 방수 기능이 어느 정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막상 비를 좀 맞으니까 원단이 젖으면서 색이 변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고급키링을 가방에 달고 나왔는데, 옷이랑 가방이랑 같이 젖어서 찝찝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바람막이가 비를 막아주긴 해도 완전히 방수는 아니어서, 소매 끝으로 물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우산을 썼는데도 이 모양이면 그냥 비 오는 날엔 안 입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입어보고 꽤 만족스러웠던 마음이 비 한 번에 조금 사그라들었다.

커플바람막이로 입는 사람들을 보며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를 걷는데 똑같은 디자인의 바람막이를 맞춰 입은 커플이 지나갔다. 내가 산 건 화이트인데, 그들은 블랙으로 커플바람막이를 맞춰 입고 있었다. 그걸 보니까 갑자기 내가 산 옷이 너무 흔한 디자인인가 싶기도 하고, 나만 너무 하얀색으로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싶어 괜히 민망해졌다. 사실 바람막이라는 게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막상 남들이 입은 걸 보면 내가 입은 거랑 미묘한 디테일 차이가 자꾸 비교된다. 저 사람들은 주말에 공원이라도 가나 보다. 나는 비 젖은 옷을 입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말이다.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오늘 오후가 되니까 또 날씨가 화창해졌다. 옷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주긴 한다. 하지만 이 옷이 이번 가을 내내 교복처럼 입힐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일단 며칠 더 입어봐야 알겠지만, 어제 급하게 산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다만 이 옷을 입고 나갈 때마다 세탁 걱정, 비 올 때 걱정을 할 생각을 하니 조금 피곤해진다. 다음엔 그냥 좀 더 어두운색으로 살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계절이 바뀌는 걸 옷 하나로 체감한다는 게 좀 허무하면서도 나름의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내일은 좀 덜 쌀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