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옷을 고를 때마다 자꾸 예전 기억이 겹쳐 보여서 힘들다

요즘 옷을 고를 때마다 자꾸 예전 기억이 겹쳐 보여서 힘들다

어쩌다 옷가게 들어갔다가 덜컥 겁부터 났다

며칠 전 평소처럼 퇴근길에 백화점 4층 여성복 매장들을 좀 둘러봤다. 이제는 대놓고 ‘올드머니룩’이니 뭐니 하면서 차분한 베이지색이랑 네이비색 니트들이 쏟아져 나오더라. 예전 같았으면 ‘아, 저건 좀 고급스러워 보이네’ 하면서 가격표 먼저 확인했을 텐데, 이번엔 매장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부터가 왠지 모르게 주춤하게 됐다.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사람 많은 곳, 특히 탈의실이 있는 공간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태권도장 관장이 탈의실에 몰카 설치해서 수천 번이나 촬영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게 자꾸 뇌리에 박혀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엔 백화점 가서 옷도 몇 벌씩 입어보고 거울 보면서 고민했는데, 이제는 피팅룸 입구에서부터 왠지 모를 긴장감이 먼저 든다.

30대에 들어서니 옷 고르는 기준도 애매해진다

사실 30대 중반이 되니까 옷 고르기가 참 어렵다. 너무 싼 건 질이 금방 떨어져서 한 철 입고 버리기 일쑤고, 그렇다고 브랜드 하나 잘 못 고르면 디자인이 너무 올드해 보이거나 핏이 어정쩡해서 손이 안 간다. 백화점 3층이나 4층에 있는 브랜드들 보면 기본 20만 원에서 40만 원대인데, 요즘 물가 생각하면 가격이 정말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진만 보고 사자니 사이즈 미스 때문에 반품하는 것도 일이고, 무엇보다 내가 입었을 때 그 느낌이 날지 확신이 안 선다. 결국 이것저것 보다가 매장에서 피팅은 포기하고 그냥 눈으로만 구경하다 나왔다. 옷 고르는 게 예전엔 스트레스 해소였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숙제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들

그날 결국 아무것도 안 사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 보는데, 여기저기서 추천해주는 30대 여성 출근룩들이 계속 뜨더라. 린넨 소재 셔츠나 슬랙스 같은 것들. 다 예쁘긴 한데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예전에는 그냥 ‘내 몸에 잘 맞나, 색감이 괜찮나’가 고민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매장 탈의실을 이용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씁쓸하다. 옷 하나 사려고 고민하는 건데, 왜 세상은 이렇게까지 신경 쓸 게 많아진 건지 모르겠다. 단순히 옷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느낌이 드니까 쇼핑 자체가 참 건조해졌다.

다들 사이즈 고민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인터넷으로 161cm에 49kg 정도 되는 모델들이 입은 옷들을 보면 그냥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내가 입으면 전혀 다른 핏이 나올 걸 알면서도 자꾸 그런 사진을 보게 된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 다른데, 딱 맞는 옷을 찾는다는 게 참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매장에 가서 일일이 다 입어보기도 이제는 피곤하고, 피팅룸 자체가 주는 심리적인 거부감도 한몫한다. 예전에는 30분이면 쇼핑 끝내고 기분 좋게 집에 왔는데, 지금은 옷 한 벌 고르는 데 며칠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옷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기분 전환이 필요했던 건데, 쇼핑하러 나갔다가 오히려 더 복잡한 마음만 안고 온 기분이다.

결국은 그냥 집에 있는 옷이나 더 입기로 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옷 쇼핑을 그냥 안 하려고 한다. 굳이 가서 확인해야 하는 피로감도 싫고, 지금 당장 꼭 사야 할 만큼 사고 싶은 옷도 없다. 그냥 작년에 입던 옷들 잘 관리해서 입는 게 마음 편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브랜드는 소재가 어떻고, 어떤 건 핏이 어떻고 하는 정보들이 넘쳐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입고 싶을 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환경인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 나중에 좀 시간이 지나면 이런 마음도 조금 무뎌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이 상태가 딱 나한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