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갑자기 풀리니까 마음이 자꾸 들떴다. 작년에는 뭘 입고 다녔는지 옷장을 열어보면 항상 입을 게 없다. 이게 다들 겪는 일이겠지만, 이번 주말에는 진짜 마음먹고 나가서 봄 외투 하나 장만해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일단 대전신세계 Art&Science로 향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더라.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뱅글뱅글 돌면서 시간을 꽤 보냈다. 진이 다 빠진 상태로 겨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벌써부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너무 화려하거나 너무 짧거나
매장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기 시작했다. 40대가 넘어가니까 이제는 무조건 편한 게 최고다 싶으면서도, 막상 거울 앞에 서면 또 좀 갖춰 입은 느낌이 나야 할 것 같고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수입 여성 의류 매장 몇 군데를 둘러봤는데, 요즘 나오는 봄 쟈켓들은 왜 이렇게 다들 크롭 기장인지 모르겠다. 배는 가려줘야 마음이 편한데, 골반 위로 올라오는 옷들은 아무리 예뻐도 손이 안 간다. 점원분이 지금 이게 제일 잘 나가는 디자인이라고 권해주시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이 영 어색해서 어깨만 으쓱했다. 결국 30만 원대 후반인 양가죽 자켓 하나를 걸쳐봤는데 가죽은 예쁜데 팔이 너무 길어서 수선해야 한다는 말에 또 고민이 됐다. 수선비도 그렇고, 기다리는 것도 귀찮고.
하객룩과 나들이룩 사이의 애매한 지점
친척 결혼식이 곧 있어서 하객룩도 같이 볼까 싶었다. 퀸잇 같은 앱에서 보던 브랜드들이 여기저기 보이길래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봤다. 확실히 인터넷으로 사진만 보는 거랑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는 건 다르다. 원단 느낌이 생각보다 빳빳하거나, 생각보다 흐물거려서 사진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봄나들이 가려면 좀 밝은 색깔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밝은색 외투는 한두 번 입고 나면 금방 때가 탈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작년에 샀던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도 세탁소에 맡길 때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좀 짙은 네이비나 차라리 블랙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런데 막상 거울에 대보면 얼굴빛이 영 칙칙해 보이고. 이래저래 만족스러운 옷을 찾기가 참 어렵다.
팝업스토어만 구경하다 끝난 하루
쇼핑하러 간 건데 정작 옷보다는 식품관 근처에 있는 팝업스토어만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길래 뭔가 싶어서 봤더니 디저트 가게더라. 나도 모르게 줄을 서서 20분 넘게 기다렸다. 커피 한 잔이랑 디저트 하나 사고 나니 이미 체력은 바닥이었다. 한 서너 시간 걸었나, 다리도 아프고 당도 떨어져서 쇼핑 의욕이 싹 사라졌다. 결국 새로 산 건 없고 식료품만 잔뜩 사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까 오늘 입고 나간 그 낡은 니트가 제일 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작년에 입던 거 잘 드라이해서 입을까 싶다.
고민만 하다가 연휴가 다 지나가네
사야 할 명분이 있으면 뭐든 쉽게 살 것 같은데, 막상 살 기회가 생기니 오히려 더 신중해지는 것 같다. 가격대도 20만 원대에서 50만 원대 사이로 생각하고 갔는데, 마음에 드는 건 100만 원이 훌쩍 넘거나 아니면 아예 너무 저렴해서 질이 안 좋아 보이거나. 딱 중간을 찾는 게 제일 힘든 것 같다. 사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대충 골랐으면 벌써 배송받았을 텐데, 굳이 고생하면서 백화점까지 간 보람이 있나 싶기도 하다. 다음 연휴 때는 그냥 집에서 쉬면서 천천히 고민해보거나, 아니면 아예 쇼핑을 포기하고 가까운 공원이나 다녀와야겠다. 봄옷 사기는 매년 이렇게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