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쇼핑몰의 모델 핏만 믿고 샀다가 실패한 첫 단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게 된다. 입을 옷은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로 사자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애매하다. 요즘 유행한다는 20대 남성 옷 브랜드나 인기 순위에 올라와 있는 남성의류 쇼핑몰들을 뒤적거리다 보면 모델들이 입은 옷은 참 깔끔하고 예뻐 보인다. 키 180센티미터에 60킬로그램 중반대쯤 되어 보이는 모델들이 툭 걸친 니트와 슬랙스는 당장이라도 사서 입으면 평범한 나도 반은 갈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얼마 전 지인 결혼식에 입고 갈 만한 단정한 상의가 필요해서 한 쇼핑몰에서 7만 원대 검은색 라운드 니트와 회색 슬랙스를 주문했다. 가격도 적당하고 후기들도 무난하길래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배송은 3일 정도 걸려 도착했다. 택배 상자를 뜯고 거울 앞에서 입어보는 순간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깨는 좁아 보이고 밑단은 어정쩡하게 붕 떴다. 슬랙스는 허벅지가 너무 꽉 끼어서 걸어 다닐 때마다 민망할 정도로 핏이 망가졌다. 반품 배송비 6,000원을 내고 다시 포장하면서, 화면 속 모델과 내 체형의 간극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했다.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 게 점점 피곤하게 느껴지는 시작점이었다.
퇴근 후 강남역 매장에서 마주한 피팅룸의 긴 대기 줄
결국 눈으로 보고 입어보고 사야겠다는 생각에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 보니 요즘 20대들이 자주 찾는다는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점이 근처에 있었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매장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로 대학생이나 내 또래 직장인들이 많아 보였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기본 니트와 무난한 데님 팬츠를 몇 개 골라 피팅룸으로 향했다.
하지만 옷을 입어보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내 앞으로 대기 인원만 10명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직원은 대기 시간이 최소 20분은 걸릴 거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양손에 든 채 좁은 복도에서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며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겨우 차례가 되어 들어가 입어본 바지는 기장이 너무 길어 수선이 필수적이었고, 니트는 목 부분이 까슬거려서 피부가 금방 붉어졌다. 오프라인 매장에 직접 찾아오는 수고를 들였음에도 딱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빈손으로 매장을 나올 때의 허탈함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가격대가 애매해진 7만 원대 의류의 실물 품질
예전에는 7만 원에서 8만 원 정도를 주면 꽤 괜찮은 브랜드의 중가 니트나 셔츠를 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 그런지 이 가격대의 옷들이 참 애매해졌다. 지오지아나 탑텐 같은 대기업 SPA 브랜드 매장부터 로드샵까지 둘러봐도, 가격표에 적힌 숫자에 비해 원단이 너무 얇거나 폴리에스터 섞인 비율이 높아서 만졌을 때 뻣뻣한 느낌이 강한 옷들이 수두룩하다.
몇 번 빨면 목이 늘어나거나 보풀이 잔뜩 일어날 게 뻔히 보이는 옷에 7만 원이라는 돈을 지출하기란 참 망설여진다. 매장에서 옷 안쪽에 붙은 세탁 라벨과 혼용률을 꼼꼼히 확인해 보아도 아크릴 비율이 80% 이상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다고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컨템포러리 브랜드로 눈을 돌리기에는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다.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찾는다는 것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매번 쇼핑할 때마다 가성비와 품질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매장을 뱅뱅 도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보세 의류의 프리사이즈와 SPA 브랜드 규격의 미묘한 차이
길거리 보세 옷가게나 소규모 온라인 쇼핑몰에서 흔히 파는 ‘프리사이즈’ 옷들은 가끔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만든다. 상의 프리사이즈라고 해서 사면 가슴 품은 엄청 넓은데 소매 기장은 짧아서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손목이 훤히 드러난다. 반면 대기업 SPA 브랜드인 에이치앤엠이나 유니클로 같은 곳의 L 사이즈는 가슴과 어깨는 딱 맞는데 기장이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와서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이 두 부류의 옷들을 비교해 가며 입다 보면, 도대체 내 몸이 표준 체형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건가 싶은 자괴감마저 든다. 보세 옷은 트렌디한 디자인이 많지만 마감이 엉성하고 실밥 처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성 브랜드 옷들은 마감은 비교적 깔끔하지만 디자인이 너무 밋밋해서 입었을 때 아저씨 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이 미묘한 경계선에서 내 체형에 딱 맞는 핏과 깔끔한 마감을 동시에 충족하는 옷을 찾는 일은 매번 피곤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결국 옷장에 채워진 어정쩡한 옷들을 보며 드는 생각
주말 내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결국 몇 벌의 옷을 사서 옷장에 걸어두긴 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에 들어서 샀다기보다는, 더 이상 쇼핑하는 데 시간을 쓰기 싫어서 타협하고 타협해서 고른 옷들에 가깝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니트를 보니 여전히 목 부분이 조금 거슬릴 것 같고, 바지는 조만간 세탁소에 맡겨 기장을 수선해야 할 텐데 그것조차 귀찮아서 계속 미루고 있다.
남들은 인터넷 쇼핑몰 순위 상위권에 있는 곳에서 대충 사도 잘만 입고 다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옷 한 벌 살 때마다 이렇게 고민이 많고 피곤해하는지 모르겠다. 다음 계절이 오면 또 똑같이 인터넷 창을 켰다 껐다 반복하고, 주말에 강남역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내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매번 사도 사도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은, 결국 내 옷장에 마음에 쏙 드는 옷이 단 한 벌도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