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에어컨 때문에 얇은 여름 바람막이를 샀는데 지퍼가 자꾸 씹힌다

회사 에어컨 때문에 얇은 여름 바람막이를 샀는데 지퍼가 자꾸 씹힌다

사무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시작된 여름 아우터 고민

요즘 회사 사무실 에어컨이 너무 세다. 오전 10시만 지나도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찬 바람이 위에서 계속 내려오는데, 그렇다고 중앙 제어 시스템이라 온도 조절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매번 총무과에 전화를 걸어 온도를 올려달라고 하기에는 더위를 심하게 타는 주변 동료들 눈치가 보인다. 작년 여름에는 대충 입고 다니던 얇은 셔츠를 의자 뒤에 걸쳐놓고 추울 때마다 입었지만, 올해는 유독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냉방병 기운이 머리부터 지끈거리며 빨리 찾아왔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가방에 넣어 다니며 가볍게 걸칠 만한 얇은 겉옷을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매일 출퇴근길 지하철을 탈 때 가방에 마구 쑤셔 넣고 다녀도 주름이 덜 가고 오염에 강한 실용적인 재질을 찾는 것이었다. 지하철을 타면 땀을 흘리는 사람들과 에어컨 바람이 뒤섞여 묘한 냄새가 옷에 배기 쉬운데, 매번 세탁을 까다롭게 해야 하는 재질이면 결국 며칠 입지도 않고 방치할 게 뻔했다.

린넨 가디건 대신 바람막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

처음에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리며 고민했던 건 남자린넨가디건이었다. 린넨 소재 특유의 서늘함이 있고 단정해 보여서 출근 룩으로도 무난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넨 가디건은 가방 안에 잠깐만 뭉쳐서 넣어두어도 온통 구겨져서 입었을 때 오히려 후줄근해 보이기 십상이라는 단점이 떠올랐다. 매번 다림질을 해서 입을 자신은 애초에 없었다. 그렇다고 바람막이조끼를 입자니 팔뚝 쪽으로 직접 내리쬐는 에어컨 바람을 막아주지 못해 반쪽짜리 해결책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부피를 적게 차지하면서도 소매가 길어서 팔을 완전히 덮어주는 얇은 바람막이 종류가 가장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털 사이트에 남자바람막이추천 같은 단어들을 쳐보았는데, 낚시터나 등산로에서 입을 법한 너무 현란한 원색 아웃도어 제품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무실에서 일할 때 튀지 않고 단정하게 입을 수 있는 단색의 아주 무난한 여름 점퍼가 필요했을 뿐이다.

신촌 매장에서 실물을 보고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과정

결국 주말에 신촌 현대백화점 지하 매장에 있는 여러 캐주얼 의류 브랜드를 돌며 실물을 직접 보고 골라보기로 했다. 마침 마음에 드는 차콜 색상의 얇은 바람막이를 발견했는데, 아쉽게도 매장 매대에는 내 사이즈인 L 사이즈가 품절이었다. 직원은 다른 지점에서 주문해 받으면 주말을 제외하고 4일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어차피 기다려야 할 거라면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모델명을 적어와 집에서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온라인 몰에서 배송비를 포함해 39,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어서 바로 결제를 마쳤다. 요즘 하도 당일 배송이 흔하다 보니 택배를 기다리는 사흘이라는 시간이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첫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얇아서 비닐봉지 한 장을 들고 있는 것처럼 허접한 느낌이 들었다. 조명 아래에 비춰보니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라 과연 이게 에어컨의 찬 기운을 제대로 차단해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3만 원대 저렴한 가격 뒤에 숨겨진 자잘한 불편함들

출근할 때 가방에 챙겨가서 실제로 며칠간 입어본 소감은 참 미묘하다. 가방 한구석에 대충 뭉개 넣어도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구김도 잘 가지 않는 점은 아주 편했다. 하지만 입고 움직일 때 발생하는 바스락거리는 마찰음이 생각보다 너무 크게 거슬렸다. 특히 우리 사무실처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는 조금만 팔을 움직여도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주변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지퍼의 퀄리티가 상당히 아쉬웠다. 원단이 너무 얇고 힘이 없다 보니 지퍼를 올릴 때마다 얇은 안감이 지퍼 이빨 사이에 자꾸만 끼어들어가 씹혔다. 급하게 지퍼를 올리다가 옷감이 찢어질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3만 원대라는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감수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지퍼를 올릴 때마다 옷자락 밑단을 한 손으로 팽팽하게 당겨 조심스럽게 올려야 하는 이 사소한 귀찮음은 생각보다 짜증을 유발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뻑뻑한 지퍼가 주는 애매한 만족감

또 하나의 거슬리는 부분은 소매 끝부분의 밴딩 처리가 너무 헐렁하다는 점이다. 업무 특성상 타이핑을 오래 해야 해서 소매를 팔뚝 중간까지 걷어 올릴 때가 많은데, 고무줄이 헐거워서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소매가 스르륵 아래로 내려와 손목을 덮어버린다. 그렇다고 소매를 강하게 접어 올리면 얇은 원단이 보기 싫게 뭉쳐서 핏이 엉망이 된다. 이런 자잘한 불편함들을 겪으면서도 아웃도어 전문 매장에서 1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급 여름 아우터를 새로 사야 할까 고민해봤지만, 겨우 사무실 냉방 차단용 옷에 그만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낭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저렴한 바람막이를 대충 한 철 입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애매한 옷이 행거에 걸려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다음에는 그냥 귀찮더라도 직접 재질을 꼼꼼히 만져보고 제대로 된 걸 사야겠다는 미련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