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락거리는 점퍼를 사러 나갔다가 그냥 돌아온 날

바스락거리는 점퍼를 사러 나갔다가 그냥 돌아온 날

어설픈 바람막이 하나로 버티려던 계획

날씨가 갑자기 애매해졌다. 아침에는 쌀쌀한데 점심 지나면 덥고, 또 저녁에는 바람이 불어서 얇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나가기엔 영 불안한 그런 날들이다. 작년에 산 바스락거리는 질감의 바람막이가 하나 있긴 한데, 이게 너무 등산복 같아서 도저히 출근할 때는 못 입겠더라. 뭔가 좀 벙벙하면서도 셔츠 같은 느낌이 나는, 그런 자연스러운 아우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무작정 성수동 편집숍들을 둘러보러 나갔다. 요즘은 다들 숏하고 크롭된 기장을 많이 입던데, 나는 키가 작아서 그런지 너무 짧은 건 입으면 오히려 몸이 더 부해 보이는 느낌이라 좀 곤란했다. 무신사나 인스타그램 광고로 본 것들은 다 예쁜데, 막상 실제로 보니까 재질이 너무 비닐 같거나 지퍼 부분이 엉성해서 망설여졌다.

20만 원이 넘는 자켓의 가격표를 보고

편집숍 두 곳을 돌았는데, 맘에 쏙 드는 건 가격이 28만 원이었다. 디자인은 딱 내가 원하던 그 프렌치 시크 느낌의 오버핏 자켓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재가 너무 가볍지도 않고 적당히 힘이 있어서 툭 걸치기만 해도 스타일이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돈을 주고 매일 편하게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직장인 코디로 활용하기엔 너무 얇고, 그렇다고 여름에 입기엔 긴팔이라 계절감이 참 애매하다. 점원분은 요즘 공항룩으로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공항 갈 일도 없고 그냥 매일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가격표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내려놓고 나왔다. 왠지 사고 나서 얼마 못 입고 옷장에 처박아둘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집 근처 보세 가게에서 찾은 의외의 물건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작은 보세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셔츠형 자켓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은 6만 5천 원. 편집숍에서 본 것보다 약간 소재가 얇고 지퍼가 아니라 단추 형식이었는데, 오히려 더 편하게 막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팅룸에 들어가서 입어보니 내가 찾던 딱 그 분위기다. 어깨 선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소매 통도 넉넉해서 안에 얇은 니트를 입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안감 마무리가 조금 거칠긴 한데, 어차피 한 철 입고 말 거라면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왠지 선뜻 사지 못하고 계산대 앞에서 3분 정도 고민했다. 이게 진짜 잘 산 걸까, 아니면 편집숍에서 본 비싼 걸 안 샀다는 위안 때문에 합리화하는 걸까.

선택을 미루고 그냥 돌아오는 마음

결국 고민만 하다가 점원분께 “다음에 다시 올게요”라고 말하고 그냥 빈손으로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보니 지금 입고 있는 낡은 트랙탑이 더 편해 보이는 건 왜일까. 인터넷 쇼핑몰을 켜서 장바구니에 담아둔 옷들을 다시 살펴봤다. 후기에는 다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고 가벼워서 좋다’고 적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세탁 한 번 했더니 모양이 틀어졌다’고 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인가 싶다가도 비싼 건 또 너무 과한 것 같고. 봄옷 쇼핑이 이렇게까지 피곤한 일이었나 싶다. 그냥 작년에 입던 옷이나 한 번 더 세탁해서 입을지, 아니면 주말에 다시 나가서 28만 원짜리 그 자켓을 살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렸다. 어차피 며칠 뒤면 또 더워져서 반팔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