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지만 우리 일단 살아봐요..]

S#1.

몇 년 전, 서른 나이에 아버지 때문에 빚이 억단위로 생긴 친구 녀석이-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홍대로 저를 부르더군요.

 

처음보는 잔뜩 취한 모습- 집어지지 않는 계란말이에 젓가락질을 계속하면서 녀석이 하는 말이,

-00아, 너는 데스노트가 있으면, 누구 이름 쓰고 싶냐?

-나? ㅈ ㄴ 많지이~ 너는?

-하.. 나.. 나는.. ㅎㅎ 박근혜............ 그리고 아버지.

그날 그 녀석에게 영구 까방권을 마음 속으로 발급했습니다..

S#2.

저는 20대에, 자살로 연인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방어기제를 형성했는지, 아주 긴 시간을-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한 채로 살았습니다.

어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생각때문에- 3번의 진단을 받았고,

재작년에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라고 하더군요- 3번의 진단 결과 중에, 가장 제가 쉽게 납득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생각은, 문득문득 어떤 감정도 없이, 불쑥, 메마르게-

불특정한 사람의 죽음을 기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S#3.

아주 긴 시간, 저와 제 주변의 자살충동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던 차에-

지인의 한 마디가- 꽤 많은 혼란을 정돈시켜주더군요.

한 사회가 전쟁을 겪고나면, 그 회복에는 1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그 회복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30대를 내 한몸뚱이 책임지는 밥벌이에 불과한데도, 많은 부당함과- 경쟁을 지나쳐 오면서,

타인의 불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자살은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친할머니는 전쟁통에 낳은 아이 셋을 연달아 잃고, 살아남은 자식중 둘째 아들도 14살이 되던 해, 잃었습니다.

우리는 건강한 척 살고 있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삶에 비하면-

몸고생 마음고생 덜한 것이 아니냐- 최면을 걸고 살았던 세월이 길겠구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가족, 그 불행의 대물림은 끝나지 않았구나.

그 상처를 무기로, 권력을 누리던 자들과 너무 긴 시간을 보냈구나.

S#4.

행복하지 않지만, 살아보려 합니다.

타인의 불행에 기대어, 잠시 행복이라 착각하더라도-

이유없는 감정들이 물밀 듯이 밀려와도-

전혀 불행의 조건을 가지지 않은 지인들이 죽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애써,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