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복 쇼핑은 항상 의욕이 앞선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면서 새벽 공기가 달라졌다. 평소에 움직임이 없으니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다들 건강 관리한다고 요란을 떨길래 나도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사실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결심보다 쇼핑을 먼저 하는 게 순서 아닌가. 괜히 괜찮은 런닝 자켓 하나 있으면 아침마다 공원을 좀 뛸 것 같은 그런 착각. KT알파 쇼핑 채널을 보다가 우연히 본 자켓이 눈에 들어왔다. 방수 기능도 좀 있고 가벼운 소재라는데, 솔직히 기능보다는 그냥 디자인이 무난해서 골랐다. 가격대는 대략 10만 원 초반대였는데, 이런 걸 살 때는 왜 이렇게 고민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헬스장 등록비는 아까워하면서 옷값은 술술 나간다.
택배가 오면 반은 성공한 느낌
주문하고 이틀 뒤에 택배가 왔다. 박스를 뜯어보니 화면에서 본 것보다 소재가 훨씬 얇았다. 초경량 바람막이라고 적혀있더니 정말 종잇장처럼 가볍긴 하더라. 비가 올 때나 좀 쌀쌀할 때 입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헌터 선글라스나 런닝화 같은 것도 같이 광고하던데, 그런 것까지 챙겨 입으면 영락없는 운동 선수 폼이 나겠지 싶었다. 집에서 한번 걸쳐봤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제법 그럴싸했다. 왠지 내일부터 당장 5km는 거뜬히 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좋았다. 운동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랄까.
입고 나가보니 생기는 소소한 문제들
막상 다음 날 아침에 입고 나가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 너무 얇아서 그런지 안쪽에 받쳐 입을 옷이 애매했다. 반팔을 입자니 춥고, 긴팔을 입자니 뛰다가 땀이 날 것 같고. 게다가 주머니 위치가 미묘하게 높아서 핸드폰을 넣었더니 뛸 때마다 덜렁거리는 게 신경 쓰였다. 요즘 유행하는 숏자켓 스타일이라 예쁘긴 한데, 이게 런닝용으로는 좀 짧은 감이 있었다. 허리춤이 계속 올라가서 신경이 쓰이니 운동에 집중이 안 된다. 런닝맨 보면서 하하가 입고 나온 바람막이는 엄청 편해 보이던데, 내가 산 건 왜 이렇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지. 결국 집 근처 공원 두 바퀴 돌고는 땀이 식으면서 감기 기운만 들 것 같아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비 오는 날 우비로 쓰기에는 좀 아깝고
며칠 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길래 아, 이럴 때 방수 자켓 기능을 써먹어야겠다 싶어 다시 꺼내 입었다. 성인용 우비 대용으로 괜찮으려나 했는데, 빗방울이 스며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쾌적한 것도 아니었다. 바람은 잘 막아주는데 안쪽에서 묘하게 습기가 차는 느낌? 이게 소위 말하는 투습 기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이 껴입은 건지 알 수가 없다. 10만 원 주고 산 건데 그냥 평소에 동네 마실 나갈 때나 입어야 하나 싶다. 골프웨어 브랜드에서 나온 아르곤 자켓 같은 건 라운딩 갈 때 입으면 멋지겠다 싶던데, 이런 일상용 바람막이는 정말 딱 그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결국은 옷장에 박혀있는 신세
지금은 그냥 옷걸이에 걸려있다. 가끔 아침에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나 무심코 걸치고 나가는 정도. 운동하겠다는 의지는 자켓과 함께 옷장 깊숙이 들어갔다. 가끔 이 자켓을 보면 그때 왜 그렇게 신나서 결제했나 싶기도 하고. 사실 옷이 나쁜 건 아닐 텐데, 내 게으름이 문제인 거지. 조금 더 비싼 걸 샀으면 아까워서라도 더 자주 입었으려나? 아니면 그냥 적당히 싼 걸 살걸 그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뭐, 언젠가 갑자기 운동 욕구가 다시 솟구칠 때가 있겠지. 그때가 오면 옷장 문을 열어보긴 할 것 같다. 물론 그때까지 이 자켓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