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시작된 단체복 프로젝트
팀 분위기가 최근 들어 조금 어수선해지더니 팀장님이 갑자기 다 같이 입을 바람막이를 맞추자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다 큰 성인들이 똑같은 옷을 맞춰 입는다는 게 뭐랄까, 대학생 때 동아리 과잠바 맞추던 시절도 아니고 조금 쑥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절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들 ‘그럼 예쁜 걸로 해요’라며 맞장구를 치길래 나도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막상 주문하려고 보니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라. 처음엔 그냥 대충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저렴한 거 몇 개 고르면 될 줄 알았다. 근데 막상 사이트를 뒤져보니 종류가 너무 많았다. 롱자켓부터 런닝용으로 나오는 얇은 것들, 그리고 겨울을 대비한 남자 후리스나 패딩 조끼까지. 옵션만 수십 가지라 뭘 골라야 할지 첫 화면에서부터 막막해졌다.
비즈하우스와 이런저런 비교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비즈하우스 같은 곳도 들어가 봤다. 거기 보니 360도 전면 디자인이 가능한 티셔츠부터 시작해서 가을 겨울용 바람막이까지 라인업이 꽤 많았다. 가격대는 벌당 3만 원에서 6만 원 사이로 생각보다 다양했다. 우리가 예산으로 잡은 게 5만 원 이내였는데, 디자인 좀 넣고 로고 자수까지 추가하니 금세 예산을 초과하려고 해서 식은땀이 좀 났다. 주변 사람들은 차라리 근처 인쇄소 가서 그냥 무지 점퍼를 사서 프린팅만 따로 맡기는 게 싸지 않냐고 했는데, 그게 더 번거로울 것 같아서 결국 온라인 업체를 고집했다. 단체 조끼를 할지, 아니면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깔끔한 스타일의 바람막이를 할지 결정하는 데만 3일이 걸렸다. 다수결로 정했는데도 결정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허탈했다.
사이즈와 로고, 그 귀찮은 디테일들
사이즈 조사하는 게 제일 문제였다. 우리 팀원들이 체격이 다 제각각인데, 남녀 공용 사이즈로 나오다 보니 후기를 아무리 읽어봐도 감이 안 왔다. L를 시켜야 할지, XL를 시켜야 할지 단체 채팅방에서 다들 투표하듯이 의견을 냈는데, 결국엔 ‘좀 크게 입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근데 막상 샘플을 받아보니 웬걸, 105 사이즈가 거의 110처럼 크게 나왔다. 로고 위치도 문제였다. 가슴팍에 작게 넣을지 등 뒤에 크게 넣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출근할 때도 입을 수 있게’ 가슴에만 작게 로고를 넣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최선이었나 싶다. 로고 색깔이랑 원단 색깔이 미묘하게 안 어울려서 몇 번이나 수정 요청을 보냈는데, 그것 때문인지 제작 기간이 일주일은 더 길어졌다. 배송받는 데까지 거의 2주 넘게 걸린 것 같다.
결과물과 남는 찜찜함
어제 드디어 박스가 도착했다. 사무실에 쌓인 박스를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다들 기대했던 표정으로 하나씩 꺼내 입어보는데, 어떤 분은 너무 커서 옷을 먹은 것 같고, 어떤 분은 생각보다 핏이 안 산다고 투덜거렸다. 사실 나도 입어보니 조금 빳빳한 재질이라 내가 생각했던 부드러운 바람막이 느낌은 아니었다. 통기성이 좋다는 메쉬 원단을 골랐는데, 막상 입어보니 바람을 막아주기엔 좀 얇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래도 팀장님은 마음에 드시는지 벌써 입고 회의실에 들어가셨다. 아마 다음 주부터는 우리 팀 다 같이 이 옷을 입고 점심 먹으러 나가겠지. 사람들이 길에서 쳐다보면 우리 회사 유니폼인 줄 알겠지,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좀 부끄러워졌다. 굳이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막상 다 같이 맞춰 입고 나가는 날이 오면 또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잘한 일인지 확신은 안 선다. 나중에 혹시라도 이직하게 되면 이건 그냥 집에서 작업복으로나 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