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매장을 세 번이나 돌고 나서야 겨우 산 신발 이야기

백화점 매장을 세 번이나 돌고 나서야 겨우 산 신발 이야기

운동화 하나 고르는 게 왜 이렇게 유난인지 모르겠다

주말에 잠실 롯데백화점을 갔는데, 목적은 딱 하나였다. 출퇴근용으로도 괜찮고 주말에 원피스에 툭 걸쳐 신어도 이상하지 않은 하얀 가죽 스니커즈를 사는 것. 사실 지금 당장 신을 신발이 없는 건 아니다. 신발장 구석에 1년 넘게 신은 낡은 에어 운동화가 한 켤레 있긴 한데, 가죽이 벗겨지고 꼬질꼬질해져서 이제는 도저히 사무실에서 신을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쿠팡 같은 곳에서 대충 저렴한 거 하나 시킬까 싶다가도, 신발만큼은 직접 신어보고 사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결국 집 밖을 나섰다.

메리제인인지 운동화인지 헷갈리는 디자인의 함정

요즘 매장마다 메리제인 스타일 스니커즈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예쁘긴 진짜 예뻤다. 발등을 가로지르는 스트랩이 있어서 귀여운 느낌도 나고, 가죽도 부드러워 보였다. 근데 막상 신어보니 내 발등이랑 안 맞는 건지 자꾸 스트랩 부분이 붕 떴다. 점원분이 ‘이거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디자인이에요’라면서 20만 원 중반대 가격표를 보여주는데, 속으로는 ‘이걸 신고 계단을 오르내리면 발목이 너무 아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결국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사기엔 데일리 슈즈로서의 기능이 조금 의심스러웠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좀 더 둘러볼게요’하고 나왔는데, 그 점원분의 묘하게 굳은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름만 가죽이지 딱딱해서 못 신겠던 것들

두 번째 매장에서는 10만 원 후반대의 가죽 운동화를 신어봤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둥근 앞코 디자인이라 청바지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소재였다. 분명 천연 가죽이라고 적혀있는데 손으로 눌러보니 왜 이렇게 딱딱한지. 새 신발이라 그런가 싶어 한 5분 정도 매장 안을 서성여봤다. 뒤꿈치가 벌써부터 빨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멋모르고 샀던 5만 원짜리 단화가 생각났다. 그때도 디자인만 보고 샀다가 뒤꿈치가 다 까져서 결국 헌 옷 수거함 근처에 버리고 왔는데, 그때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니 선뜻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가죽 운동화는 발이 편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인데, 오늘 본 것들은 하나같이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속상했다.

3시간의 사투 끝에 결국 선택한 익숙함

거의 3시간을 백화점 4층과 5층을 오가며 매장을 열 군데는 넘게 들어갔던 것 같다. 다리도 슬슬 아파오고, 그냥 집에 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구석에 있는 브랜드 매장에서 무난한 디자인의 가죽 스니커즈를 발견했다. 가격은 14만 9천 원. 특별할 것도 없고 그냥 흔한 화이트 스니커즈였다. 그런데 신어보니 확실히 밑창 쿠션감이 달랐다. 아까 본 그 메리제인 스타일들보다는 확실히 투박하지만, 적어도 발이 편하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점원분이 ‘이거 베스트셀러라 사이즈가 금방 빠져요’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냥 여기서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결제했다.

새 신발을 신고 집에 돌아오는 길의 찜찜함

결국 산 신발을 신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데, 묘하게 기분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조금 더 세련된 디자인이었나, 아니면 그냥 내 발이 이상한 건가 싶었다. 집에 와서 다시 신어보니 백화점 거울 앞에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둔탁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내일 출근할 때 뒤꿈치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건 다행이다.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역 옆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는데, 신발 박스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던지. 다음에는 그냥 신던 신발 브랜드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지금 신는 낡은 운동화를 한 번 더 닦아서 신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